올해 말에는 꼭 나간다.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고는 싶지만, 돈이 아쉽긴 아쉽다. 겁나긴 겁난다. 그 동안 뭐좀 해보려고 아둥바둥하면서 시도했던 것들이 모두 실패하면서 나도 참 겁이 많아졌다. 버틸 수 있는 현금이 아쉽긴 정말 아쉬운게 지금 생각이다. 그 돈 챙겨서 나와가지고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지금 용기있게 나가서 4개월이라는 내 인생을 아껴보자라는 생각보다 더 앞서고 있다.

동물원에 있다 보니 참 겁이 많아지긴 많아졌다. 

그래도 올해 말까지는 꼭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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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얼간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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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오욕의 세월 4년을 채워가고 있다. 난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후회와 한숨과 치욕으로 가득찬 4년. 이제 조금만 더 참자.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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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얼간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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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한지도 만 4년을 채워간다. 그 동안 난 뭘 했을까. 그냥 멍 때리면서 사업 구상만 잔뜩하고 실행에 옮긴건 손가락으로 꼽는다. 정말 난 뭘 했을까. 다른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나가면서 자신만의 비전을 실현해나가는데... 난 정말 뭘 하고 있는걸까.

어느 창업가 둘의 창업스토리를 읽게 되었다. 한 명은 매우 젊은 나이에 사업에 성공하여 승승장구하다가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이 잘 모르던 사업에 위어들었고, 억대의 빚을 떠앉게 되었었다. 그러고 그 빚을 갚는데 신용불량자로 6년의 세월을 살았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대학도 안가고 바로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길을 밟았다. 첫 사업은 잘되었었지만 그 사업은 몇 년 못가 망하게 되었고 그 대표 역시 억대의 빚을 갖게 되었다. 이 일로 빚쟁이들이 집까지 찾아오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대표는 그 억대의 빚을 갚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들에 비하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시기는 고난도 시련도 아닌 거 같다. 난 그냥 욕구불만에 실행 못 옮기는 겁쟁이에 불과한 것 같다. 이제 조금만 더 참자. 곧 그 날이 온다. 넓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배를 띄우는 그 날이 곧 온다. 같이 한 번 가봅시다, 대항해시대로.

Posted by 얼간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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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오늘의 디스커버리 2013. 7. 30. 22:32 |

커져가는 그리움의 크기는 어느 정도까지 커질 수 있을까. 그렇게 그리움이 커갈수록 나의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의 깊이가 점점 깊어져 간다. 그래서 좋다.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의 깊이가 계속 깊어져서 너무 좋다. 당신이 너무 좋다. 히힛

Posted by 얼간이3
:

사업 준비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제 발사 버튼만 누르면 된다. 발사 버튼만 꾸욱 누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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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얼간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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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누군가를 위해 이 번역을 바칩니다.

드루 휴스턴 MIT 졸업 축사 연설(MIT Commencement Address by Drew Houston, June 7 2013)



감사합니다, Reed 총장님. 그리고 이번에 졸업하는 모든 졸업생 여러분들 모두 졸업 축하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제 모교인 MIT에 다시 돌아오게 되어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저는 아직도 Brass Rat(MIT 졸업생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오늘같은 졸업식 축사를 하며 제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자랑스럽네요.

참 많은 의미에서 오늘이 특별한 날인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는, 오늘부로 여러분들은 더 이상 박스(스펙을 말하는 듯)를 체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난 약 20년 동안은 성공이란, 장애물(hoop)을 하나씩 차례차례 넘어가는 것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뭐 예를 들면, 이러이러한 점수를 따고 이러이러한 대학을 들어가고, 이러이러한 수업을 듣고, 이러이러한 학위를 따고 그런 거죠. 특히 MIT 같은 명문 대학에 들어와서 또 다음 명문 조직에 들어갈 수도 있을 거에요. 이제 오늘부로 이런 것들이 더 이상 성공을 약속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건 오늘부로 '끝'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 계획이 정말 어려운 이유는 여러분들이 어디로 가는지 여러분들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보통은 목표로 하는 곳에 최대한 빨리 가고 싶어하죠. 아마도 여러분들은 창업을 하고 싶어 하거나, 암을 치료하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위대한 소설을 하나 쓰고 싶어 하죠. 또 누가 알아요? 정말 비참하게 살아갈 지도 있어요.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여기 이렇게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졸업 가운을 입고 졸업 축사를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저는 7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사실 저는 거창한 계획을 가져 본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닳은 것은 졸업 후에 그런 거창한 계획을 갖는 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오늘부터 시작할 진짜 인생이 여러분들의 계획과 얼마나 다를 지 굉장히 많이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제가 만약에 여러분들처럼 오늘 졸업하는 학생으로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있게 된 이유는 당연히 매우 똑똑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후로 여러분들에게 이런 걸 얘기하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성공을 위한 레시피는 180도 바뀝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성공을 위한 컨닝 페이퍼를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졸업할 당시에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에요.

제 컨닝페이퍼에는 그닥 많은 내용이 있지는 않아요. 뭐가 있냐면, 테니스 공 하나와 동그라미 하나, 30,000이라는 숫자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게 당췌 무슨 말인지 지금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을 거에요. 그래도 한 번 들어보세요 :)

저는 제가 21살 때 Chili라는 제 첫 창업을 했어요. 제 코파운더(cofounder, 공동창업자) Andrew Crick과 저는 그 전까지 단 한 번도 창업을 해 본적이 없었어요. 우린 시청에 방문할 때 정장을 입어야 하는 지도, 중요 서류에 찍을 법인 인감을 만들어야 하는 지도 모르는 초짜들이었죠. 컴퓨터 키고 인터넷으로 2분이면 끝나는 일들인데 말이죠. 그닥 신나지는 않았지만 우린 사업을 했어요. 우린 밥 먹으면서, SAT 온라인 수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 당시의 학생들은 아직도 800 페이지짜리 큰 책을 들고 다니면서 공부했고, 다른 온라인 학습 사이트는 퀄리티가 그닥 별로였어요. 우리가 만든 사이트를 '탁월함'을 뜻하는 Accolade라 명명했습니다. 후에 "The Accolade Group, LLC"라고 다시 명명했고, 우린 이 이름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어요.

하루는 명함 인쇄용지를 가지러 집에 가는 길에 Staples에 들렀습니다. 사업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순서이기도 했던, 로고가 박힌 명함에 제 이름과 Founder(대표, 창업자)라는 직위를 써 넣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컨퍼런스를 다니며 제 명함을 돌리고, 여자들에게 "나 사업하는 남자에요"라고 얘기하는 것이었죠. 진짜 기분 짱이었어요.

그러나, 그 중 최고로 보람 있었던 것은 새로운 모든 것들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름 내내 사교 모임 하우스(fraternity house, 여기서는 Phi Delta Theta를 의미함. Ivy League 대학 등에 흔히 존재하는 상위 사교 모임.)에 먹고 자고 했었죠. 그리고 가끔은 5층에 사다리를 타고 옥상에도 올라 갔었습니다. 아마존에서 산 각종 경영 서적을 잔뜩 끌어 안고 말이죠. 그리고 그 마케팅, 영업, 경영 관련 책들을 주말 내내 읽곤 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모든 것들을 알고자 말이죠. 절대로 Phi Delta Theta 하우스 옥상에서 MBA를 딸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다 읽었습니다.

몇 년 후,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I felt like I had to paddle harder and harder to make progress, and at some point I just snapped and couldn't deal with any more math questions about parallel lines or the train leaving Memphis at 3:45.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실패가 되어가는 데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창업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창업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잠시 휴식을 갖기로 했습니다. 물론 Course 6 쯤 되면 가끔 휴식이란 '포커 봇'을 쓰는 걸 의미하죠. 포커 봇이란 여러분들이 온라인 포커를 칠 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클릭질하면서 사이버 머니를 죄다 잃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도 흥미로운 뻘짓이었어요. 완전 집착했었죠. 샤워하면서도 생각했고, 한 밤 중에도 생각했었습니다. 마치 스위치 같았어요. 저는 기계 같은 거였죠.

그런 와중에 저희 엄마 아빠가 저에게 New Hampshire로 와서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포커 봇을 하면서 진심으로 뻘짓을 계속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차에다가 컴퓨터 장비를 싣고 갔죠. 부모님 댁에 있는 식탁이 그닥 크지 않아서 그 위에 있던 후라이팬과 냄비들을 딴 데로 옮기고 제 모니터들을 올려놨어요. 이번엔 저희 엄마가 제가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셨습니다. 엄마는 제가 감옥에 가게 될 거라고 확신했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것을 하라는 것이지만, 그게 현실은 아닐 겁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일이 진정 좋아하는 일이라고 믿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습니다.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가 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들은 그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눈이 뒤집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에게는 이 사람들이 마치 테니스 공을 쫓는 개 한마리 같았어요. 눈빛이 반쯤 미쳐 있었고, 개 목줄은 끊어져 있고, 이리저리 날뛰고, 자기 앞길에 놓인 건 뭐든 들이받으면서도 끝까지 테니스 공을 쫓는 그런 개 한마리 말이죠. 열심히 일하고 연봉도 쎈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자기 책상에 족쇄가 채워졌다는 사실에 굉장히 불평하는 그런 친구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테니스 공을 바로 찾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표준화된 테스트를 책상에 족쇄 채워진 사람 만큼이나 좋아합니다. 그래도 SAT 학습사이트 사업은 제 테니스 공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제가 두려워 했던 건 포커봇 뻘짓이랑 DropBox가 제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함께 동시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목소리가 저에게 방향을 제시해주었고, 어서 빨리 닥치고 사업에 매진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가끔은 그런 내면의 목소리가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근데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들이 받게 될 징계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흥미로운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는 거죠. 그래서 오늘 이후로, 여러분들 자신에게 일을 열심히 하라고 스스로 몰아 세우지 마시고, 여러분들만의 테니스 공을 찾아 보세요. 그 테니스 공이 여러분들을 이끌어 줄 겁니다. 그런 테니스 공을 찾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지도 몰라요. 그러니 그 공을 찾을 때까지 여러분들의 내면의 목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세요.

제가 졸업했을 당시의 여름으로 돌아가봅시다. 저의 사교모임 친구 중 하나인 Adam Smith와 Matt Brezina도 따로 창업을 했고 우리가 한 아파트에서 다 같이 일을 하면 정말 재미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정말 완벽한 여름이었어요. 거의 완벽했죠. 에어컨은 고장났고, 우린 하루 종일 코딩을 해댔죠. Adam과 Matt는 벽시계 밑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근데 그 두 친구가 시간이 갈수록 예비 투자자들과 논의를 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들과 비밀을 공유하고 헬리콥터에 타면서 말이죠. 저는 사실 살짝 질투가 났어요. 저는 창업한지 몇 년이 지난 상태였는데, Adam은 창업한지 겨우 몇 달 밖에 안되었었어요. 도대체 내 헬리콥터는 어디 있었던 걸까요?

모든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8월은 거의 다 지나가고 Adam은 우리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Adam과 Matt가 이사를 간다고요. 내 Hot Pocket(음식인듯)은 이제 더 이상 없게 되었고, 그들은 진짜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실리콘 밸리로 이사갔습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죠.

가끔 저는 Adam에게 전화를 걸어 잘 되어가냐고 물었고, Adam은 잘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오후에 Vinod를 만났어"라고 말하기도 했죠. Vinod는 Sun Microsystems를 공동창업한 억만장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크게 한 방 날렸습니다. "Vinod가 우리에게 5백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어"라고 말입니다.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충격도 받았죠. 저보다 두 살 어리고, 제 친한 맥주 친구이기도 한 Adam에게서 느낀 감정들입니다. 제겐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Adam은 슈퍼볼에 스카웃되었고, 저는 드래프트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Adam은 그 당시 자신이 저에게 필요했던 뒤통수를 후려갈긴 듯한 충격을 주었다는 걸 알지 못할 것입니다. 변화가 필요한 때였어요.

Adam과 Matt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You are the average of the five people you spend the most time with(너는 니가 함께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5명의 평균이 바로 너야). 잠시동안 그 의미를 되새겼죠. 그 5명이라는 동그라미에 과연 누가 있을까? 그래도 긍정적이었던 게, 그 동그라미를 그리는 데에 MIT라는 세계 최고의 장소가 시작점이라는 거였습니다. MIT에 오지 않았었다면 Adam을 만나지 못했을테고, 나의 최고의 코파운더(cofounder) Arash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Dropbox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동그라미가 당신의 동료와 당신 주변 사람들을 그릴 겁니다. 당신이 머무는 곳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MIT라는 단 하나의 장소가 있죠. Hollywood와 Silicon Valley도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죠.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최고의 사람들이 있는 곳은 오직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곳에 가야만 해요. 다른 곳에 머무르며 안주하지 마세요. 나만의 영웅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은 저에게 큰 이점을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영웅은 여러분들의 동그라미 안에 있습니다. 그들을 따라가세요. 진짜 action이 벌어지는 곳이 있다면 그 곳으로 가세요.

졸업 후에 여러분들이 겪게 될 마지막 함정은 "준비"일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배움은 최고로 우선시 되는 사항이지만, 무언가를 배우는데 가장 빠른 길은 'Doing(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꿈이 있다면 배우는 데에, 계획하는 데에, 그리고 준비하는 데에 여러분의 lifetime을 쓰세요. 여러분이 해야할 일은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희의 첫 투자자가 'yes'라고 하며 어디로 돈을 보내야 하냐고 물었던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24살짜리 청년에게 그 날은 마치 크리스마스 같았습니다. bankofamercia.com 사이트에서 계속 F5 버튼을 누르며 선물을 열어봤었죠. 그리고는 계좌가 60 달러에서 120만 달러로 바뀌는 그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오줌이 지릴 정도로 황홀했었죠. 계좌 돈에 콤마가 두 개나 찍혀 있었어요! 스크린샷도 해놨어요^^ 하지만 이내 갑자기 복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이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다시 회수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닳았기 때문이죠. 지금 도대체 내가 뭘 받은 거지?

**이 기분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MIT에서는 이런 걸 '소방호스로 물을 마시는 것(drinking from firehose)'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재밌는 표현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는 이를 검증하려고 속앓이를 하죠. 그러나 우린 이게 다 좋은 일이라는 걸 알죠. 그리고 이제 다른 소방호스를 찾아나설 때입니다.
You already know this feeling: at MIT we call it "drinking from the firehose." It’s about as fun as it sounds, and all of us have the internal bleeding to prove it. But we’ve also learned it's good for you. Today, one valve shuts off. Now you need to go out and find another firehose.

Dropbox는 저의 존재 자체였습니다. 여러분이 예상하는 대로, Dropbox를 창업한 것은 제 생애 최고로 재미있고 흥분되고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Dropbox 창업이 한편으로는 제 생애 최고로 치욕스럽고, 두렵고, 고통스런 경험이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고통스럽고 일이 잘못되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행히도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인생에 만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졸업할 때 GPA(학점 총점)은 결국 사라집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있을 때에는 여러분이 저지르는 모든 실수가 기록되죠. 그러나 현실에서는 방향을 바꾸거나 가드레일을 들이받지 않는다면, 충분히 빠르게 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실수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인 듯) 여러분들의 가장 큰 리스크는 '실패'가 아니고 '너무 안주하는 것(too comfortable)'입니다.

Bill Gates의 첫 창업은 신호등 제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첫 사업은 불법으로 공짜 전화를 걸 수 있게 해주는 플라스틱 호루라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업 모두 실패했었고, 그 잡스와 게이츠가 그 실패했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절망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사실이 저의 오늘을 바꾸게 한 대목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더 이상 여러분들이 저지른 실수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굳이 기억하고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부터 실패는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아요.

저는 한 때 모든 것들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제가 마음이 편안해지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갔고 어느날 밤 잠이 오질 않아 노트북을 만지작 거리며 있었죠. 저는 인터넷을 하다가 한 문구를 보았습니다. "당신의 인생에는 30,000일이 있습니다."라는 문구였죠.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무심코 계산기를 두들겨봤죠. 24 곱하기 365를 했더니, 오 이런 썅. 벌써 9,000일이나 지나버렸구나. ㅅㅂ 난 여태 뭘 한거지????

(근데 여러분은 8,000일 쯤 되죠? ㅋㅋㅋ)

30,000일이라는 숫자가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만든 컨닝페이퍼의 마지막입니다. 그 날 밤, 저는 더 이상의 준비도, 연습도, 리셋 버튼도 이제 내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걸 깨닳았습니다. 매일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에 몇 단어씩 적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 묘비에 이렇게 써있지는 않을 겁니다. "174번가, 여기에 Drew 잠들다" 이렇게요. 그 날 이후로, 저는 제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겠다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 대신, 제 인생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죠. 저는 저만의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는 모험으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심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저희 할머니께서도 지금 여기 계십니다. 그리고 다음 주는 할머니의 95번째 생신이십니다. 제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보통 할머니와 저는 전화로 더 많이 얘기 합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전화를 끊을 때마다 항상 하시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Excelsior" 입니다. '더 높은 곳으로(ever upward, 의역)!'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있어서, 여러분들의 현실 세계의 첫 날을 시작하는 것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어 가는 것 보다는, 여러분 인생이 더욱 재미있는 모험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자유를 만끽하도록 해보세요. 그리고 더 높은 ㅅ곳으로(ever upward)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얼간이3
:

2012년 4월 쯤의 일이다.


회사에서 추진하는 발전소 주기기 입찰초청 미팅이 있었다. 지멘스와 미쓰비시 중공업이 입찰에 응했다.


두 입찰사가 각각 ITB(입찰초청서)를 받고 이에 대한 deviation(입찰초청서의 조건에 대한 이견)을 협의하기 위해 미쓰비시와 먼저 미팅을 가졌다. 미쓰비시의 ITB에 대한 deviation은 거의 없었다. 상업적 조건이든, 기술적 조건이든 우리(발주사)가 원하는대로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과 허리 숙임과 함께 왠만하면 다 맞춰주겠다고. 철저히 을의 입장에서, 전형적인 영업맨의 자세로 우리에게 응했다.


그러고 며칠 후, 지멘스와 미팅을 가졌다. 참 가관이었다. ITB 내용의 거의 절반 가까이 deviation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항목 별로 조목조목 따지면서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못하겠다며 계약 내용을 송두리째 바꾸려고 시종일관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너무도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누가 발주사고 누가 입찰사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그렇게 16시간 가까이 마라톤 미팅을 끝내고, 술 한잔 하면서 어느 부장이 얘기를 해줬다. 지멘스가 저렇게 을의 입장이면서도 고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제품의 퀄리티 때문이라고. 지멘스 주기기로 발전소를 지을 경우, 타사의 주기기로 지었을 때보다 발전효율이 약 2~3% 가량 더 높게 나온다고 한다. 이 정도 효율이 차이나게 되면 발전소 건설 투자비용을 모두 회수하는 데에 드는 기간 10년에서 8년으로 약 2년 정도 단축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효율 싸움에서 지멘스는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 뒤통수에 뭔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정도는 만들어야 제조업 좀 한다고 할 수 있구나. 그리고 영업이라는 게 무조건 숙이고 들어간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자기만의 경쟁 우위와 차별화 포인트를 내세워서 자기 판으로 끌어들여 자기 판의 룰을 따르게 만드는 것. 이게 진정한 사업이고 비즈니스고 영업이 아닐까.


결국엔 미쓰비시가 낙찰을 받긴 했지만, 지멘스는 여전히 중동 발전프로젝트의 무조건적인 주기기 선정업체로 군림하고 있으며 세계 주기기 시장의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나도 이런 제조업체 하나 만들어야지.

Posted by 얼간이3
:

가슴이 뛴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늙어 버렸구나.


기억의 습작이 갑자기 생각난다.


오랜만에 들어봐야겠다.

Posted by 얼간이3
:

안녕하세요! 제가 정성스레 번역한 자료입니다! ^^ 마니마니 퍼가주세요!!


This is a prepared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delivered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여기, 지구 상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교 졸업식 축사를 있게 되어 너무나도 영광스럽습니다. 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대학교 졸업식에 조차도 가본 적이 없네요. 저는 오늘 인생에 있어서 가지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지 이야기만 하려고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번째 이야기는 점을 선으로 이어가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칼리지를 6개월쯤 다니다가 자퇴했고, 도강을 하면서 18개월 정도 다니다가 그만 뒀습니다. 제가 그만 뒀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생모는 젊은 대학원생이었고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편이 변호사인 부부에게 태어나자 마자 입양되기로 모든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한가지만 빼고요. 부부는 아이를 원했다는 거죠. 그래서 바로 다음 차례에 있었던 저희 부모님께서 예상 밖에 사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을 받으시겠어요?”라는 전화를 받으시고는 당장 입양을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17 , 저는 진짜로 대학에 갔습니다. 하지만, 철이 없게도 스탠포드 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죠. 그래서 노동자 계급이신 부모님께서 평생 모으신 재산을 대학 등록금에 쏟아 부어야 했습니다. 6개월 , 대학 공부에 별로 가치를 느끼게 되었어요.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길이 없었고, 대학 공부가 이를 해결해줄 같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모님이 여태껏 피땀 흘려 모으신 돈을 거기다 돈지랄을 했죠.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고 이제 괜찮을 거라 믿었습니다. 당시에는 겁이 났지만, 되돌아 보면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만두게 되면서 별로 재미 없는 필수과목들을 이상 듣지 않아도 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그닥 로맨틱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이제 기숙사 방도 없어서 친구 바닥에서 잤습니다. 콜라 병을 주워다가 팔아서 5센트씩 모아서 생계를 유지했고, 매주 일요일 Hare Krishna 사원에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7마일씩 걸어 가곤 했었죠.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서 우연히 빠져들게 것들은 훗날 소중한 것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드리죠.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당시, 리드 칼리지의 캘리그래피 수업은 아마 전국 최고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캠퍼스 곳곳에 포스터와 라벨은 정말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이상 정규 과목들을 듣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캘리그래피를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자 수업을 듣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 활자체, 다른 글자 조합 간의 공간 배치를 다양하게 만드는 , 타이포그라피를 더욱 멋있게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웠고, 역사적이었고, 과학이 감지해내지 못하는, 예술적으로 미묘한 자체였습니다.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어요.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 아무것도 인생에 실제 써먹을 만한 없었습니다. 그러나 10 , 매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 제가 배웠던 모든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맥을 디자인하는 데에 그것들을 모두 쏟아 부었죠. 아름다운 글씨체를 가진 번째 컴퓨터였습니다. 제가 만약, 예전에 대학교에서 수업들 중에 한과목이라도 듣지 않았었다면 맥은 다양한 글씨체나 공간적 비율이 맞는 활자체가 있는 컴퓨터로 태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윈도우도 맥을 베낀 거라서, 세상에 어떤 PC 서체들을 갖지는 못했을 겁니다. 대학을 그만두지 않았었다면, 저는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지 않았을 테고, PC에는 아름다운 글씨체가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대학 시절에는 제가 앞을 내다 보았다면 삶의 점을 잇는 자체가 불가능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 , 뒤를 돌아본다면 점들을 선으로 만드는 너무나도 확실히 눈에 보였죠.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다시 한번 말하자면, 앞을 내다 보면서는 삶의 점을 이을 없습니다. 뒤를 돌아볼 때에만 점들을 이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점들이 여러분의 미래에 언젠가 선이 것이라는 믿어야 합니다. 뭐든 믿으세요. 직감, 운명, 인생, 인연, 뭐든지요. 이런 믿음은 저를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았고, 수많은 변화가 있게 해주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저는 제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일찍 찾았거든요. 제가 스무 살일 , Woz(Steve Wozniak,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업한 공동창업주) 저는 애플 저희 부모님 차고에서 창업했습니다. 우린 정말 열심히 일했고, 10 , 2명으로 차고에서 시작한 애플은 4천명이 넘는 직원과 20 달러(2005 당시, 우리 돈으로 2.4조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번째 컴퓨터인 매킨토시를 1 먼저 출시했고 저는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짤렸습니다. 어떻게 제가 만든 회사에서 짤릴 수가 있었을까요? 글쎄요. 애플이 성장하면서 회사를 경영하는데 최적의 인물이라 생각한 사람( 스컬리, John Scully) 데려왔고 해는 그럭저럭 돌아갔습니다. 업무를 때면, 이사회는 항상 그의 편에 있었죠. 그래서 서른 살에 저는 결국 쫓겨났습니다. 공개적인 해고를 당한 거죠. 저의 지난 세월을 전부 바친 것들은 사라졌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개월 동안 해야 할지 조차 몰랐습니다. 선배들의 기업가 정신을 망가트려 놓은 죄책감도 들었고, 데이빗 패커드(HP 창업주 1) 노이스를 만나서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누구나 아는 실패의 귀감이었고 실리콘 밸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조차 했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안에서 조금씩 밝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일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거였죠. 애플에서의 일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는 퇴출당했지만 아직 일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짤린 일은 결국 제게 일어난 중에 가장 좋은 일이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부담감은 모든 것에 확신을 두지 않는,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가벼운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인생에 가장 창의적인 시기로 접어들 있게 해주었죠.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뒤로 5 동안, NeXT Pixar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아내가 최고의 여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Pixar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 만들었고, 현재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입니다. 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나면서, 애플이 NeXT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컴백했습니다. 그리고 NeXT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죠.

저는 이런 모든 일들이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들은 정말 끔찍한 극약 처방이었지만, 저는 처방이 필요했었던 거였죠. 가끔은 삶이 당신의 뒤통수를 때리기도 합니다. 믿음을 잃지 마세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서 있게 해줬던 원동력이 내가 하는 너무도 좋아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사랑하는 일을 찾으세요.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거고, 진정으로 만족하는 길은 ,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위대한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타협하지 마세요.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 그것을 찾는 순간 바로 이거다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관계가 발전하는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점점 확신을 갖게 것입니다. 그러니 일을 찾을 때까지 현실과 타협하거나 체념하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번째 이야기는죽음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제가 17살이었을 , 이런 구절을 읽었습니다.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언젠가 당신의 삶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33 동안, 구절을 정말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내가 일을 진정으로 하고 싶을까?” 그리고 며칠을 계속해서 대답이 “No” 이었을 때마다 저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있었죠.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제가 삶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자존심, 실패나 당황할 등에 대한 모든 공포감은 죽음에 직면할 바로 사라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릴 같은 두려움으로 생겨나는 함정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인생은 空手來 空手去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가는 대로 느끼고 따라가야 합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년 즈음에, 저는 진단을 받았었습니다. 아침 7 반에 스캔 검사를 받았고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저는 췌장이 뭔지도 몰랐죠. 의사는 이런 암은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집에 가서 죽음에 대비하는 좋을 거라고 또한 말했습니다. 앞으로 10 동안 하고 싶은 말을 아이들에게 불과 개월 동안 전부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죠. 모든 바뀌지 않을 것이고 이게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작별 인사였죠.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하루 종일 진단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었습니다. 저녁 이후, 저는 생체 검사와, 식도와 대장을 통해 내시경 검사를 받고서 의사 선생님이 종양에서 몇몇 세포를 채취했습니다. 저는 차분히 검사를 받았고 아내가 말하기를, 의사 선생님들이 세포를 확인한 결과,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극히 드문 종류의 종양이라고 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었던 경험입니다. 그리고 향후 동안은 이게 제일 가까이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죽을 뻔한 경험을 해보고 나니, 죽음이 쓸모가 있긴 하지만 거의 지적인 개념이었을 때보다 확신을 가지고 이제는 말할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아무도 죽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곳에 가려고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게 됩니다. 누구도 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생명이 창조한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에 그래야만 합니다. 죽음은 생명의 변화 인자입니다. 죽음은 오래된 것들을 치우고 새로운 것들을 위한 길을 만들어 줍니다. 지금 순간, 여러분들이 새로운 존재이지만, 머지않아 점점 늙게 되어서 길을 내어 줘야 날이 것입니다. 너무 감상적이긴 하지만 이것이 진리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의 결과로 만들어진 통념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생각이 여러분의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우게 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과감하게 따라갈 있도록 용감해지십시오.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은 여러분이 무엇이 되고 싶으니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외의 것들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렸을 , 저희 세대에게는 성경과도 같은 ‘The Whole Earth Catalog’라고 하는 어메이징한 잡지가 있었습니다. 여기 Menlo Park에서 별로 멀지 않은 Stewart Brand 라는 사람이 발행한 것인데 그의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책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1960년대에 PC 데스크탑 퍼블리싱이 나오기 이전에 나온 책이었죠. 책은 구글이 나오기 35 ,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든, 출판업계의 구글이었습니다. 책은 이상적이고 좋은 도구와 훌륭한 생각들로 가득 있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Stewart 그의 팀은 책의 여러 판을 발행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지막 판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의 나이일 때였을 것입니다. 마지막 판의 표지에는 모험을 좋아하는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히치하이킹 도중에 발견했을 만한 이른 아침의 시골길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사진 밑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말이 그들이 마지막 판을 발행하면서 전하는 작별 인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신에게 항상 그렇게 되뇌이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지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졸업생 여러분들 역시 그렇게 살아주기를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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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얼간이3
:
'진정한 사업가의 자질이란'

지난 30년 동안 찾아 헤매던 질문의 해답을 마침내 찾게 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 해답을 조금씩 조각하며 만들어왔다. 

5년 전 쯤엔가. 아주 젊으실 적부터 사업을 해오신 아버지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사업이 하고 싶습니다라고. 그래서 회계사가 되어서 M&A 스페셜리스트가 되어가지고 인수합병 크게 한 건 성사시켜서 그 돈 가지고 사업 크게 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 회계와 재무 경험 살려서 CEO가 되고 싶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사업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다. 인생 공부 다시 해라. 사업을 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하고 뭘 준비해야되는지. 그리고 창업을 하고 나서도 어떻게 그 길을 가야 하는지도. 

그래서 회계사 공부를 접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사업준비를 본격적으로 했고 실제로 한 번 말아먹으면서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사업가는 사업가이면 안된다. 이것이 내가 얻은 깨달음이다. 중요한 건, 자기가 선택한 아이템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 아이템에 얼마나 전문가이냐이다. 스티브 잡스도 사업가이기 이전에 예술가이자 엔지니어였고, 김택진도 사업가이기 이전에 게임을 사랑하는 엔지니어였고, 빌 게이츠도 사업가이기 이전에 엔지니어였다. 더 이상 예를 들 필요도 없는 거 같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숫자만 바라보고 사업을 시작했을까? 절대 아니다 라고 난 감히 말할 수 있다. 정말 진심으로 그 일을 사랑하고 거기서 창출되는 가치가 고객들에게 얼마나 어떤 감동을 어떻게 주느냐가 그들이 가장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을 것이다.

Built to Last에서도 그랬다. Visionary Companies 중에서 처음부터 승승장구하는 성공을 거두는 기업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50개 기업 중에 단 두 개 기업에 불과하다. Comparison Companies 중에서는 몇 개 기업일까? 내 기억에 따르면 80%에 가까운 기업들이 처음부터 성공을 거두었다. 과연 차이점이 무엇일까. 문제는 기업의 가치를 숫자에 두었느냐 비전에 두었느냐이다. 

로비오는 52번 째 게임인 앵그리 버드를 출시할 때까지 싹 다 말아 먹으면서 7년을 버티었다. Air BnB라는 사이트도 3년 동안 단 한 건의 중개도 성사시키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되었다. 과연 이런 기업들이 숫자만 바라봤다면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Absolutely NO.

기업은 수익을 짜내는 돈기계가 아니다. 진심이 담긴 가치를 창출해내는 고도의 창조집단이다.

이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사업가가 꿈인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아이템을 얼마나 사랑하세요?

 
Posted by 얼간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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